빗속에서

빗방울

비 오는 날이면 자주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.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작은 공원에서의 일이다. 우리는 그곳에서 자주 만났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. 하지만 그날은 다른 날과 달랐다.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렸고 우리는 우산도 없이 빗속에 서 있었다.

 

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하려고 했다.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비는 더욱 거세졌다. 그녀의 머리카락은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고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. 그러나 막상 입을 열려고 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.

 

그때 그녀가 먼저 말했다. "비 오는 날은 항상 특별해. 마치 세상이 우리만을 위해 멈춘 것 같아." 그녀의 목소리는 비와 어우러져 더욱 고요하고 아련했다. 나는 고백 대신 그녀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. "맞아 오늘 같은 날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."

 

우리는 빗속에서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.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. 비가 우리의 대화를 대신하는 듯했다.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.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들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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